가야와 고구려의 교류사 연구
Study of Relationship between Gaya and Goguryo
저자
李永植
발행연도
2006 
발행처
고려사학회 
언어
Korean 
학술지명
한국사학보 
권호사항
Vol.25No.-[2006]  
수록면
51.0~83.0 
KDC
911.0 
초록

본 논문은 가야제국과 고구려의 교류를 연대기적으로 복원해 볼 목적으로 준비되었다. 가야와 고구려의 교류에 관계되는 유물자료를 정리 · 제시하고, 각 유물의 시기와 역사적 성격에 관련되는 문헌기록과의 대조를 통해 단계 별 교류의 내용과 변화를 추적해 보았다. 이 연구 결과 새롭게 복원된 교류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1~3세기(전기가야)의 경남지역에서 확인되는 1~2세기 북방 계통의 鐵斧, 김해의 대성동고분군과 양동고분군에서 보이는 북방계 문물에서 고구려와의 교류를 상정할 수는 있겠으나, 그 빈도가 매우 낮고, 고구려 계통의 문물로 확신할만한 것도 많지 않다. 둘째, 3세기 포상팔국의 전쟁과 철 수출의 관련기사에서 추론되듯이, 이른 시기 가야와 고구려의 교류에는 동해안 루트도 기능하였을 것이다. 이 동해안 루트에는 전기가야의 철을 수입해 가던 濊가 개재 되어 있었고, 濊에 대한 고구려의 진출에 따라 고구려 계통의 문물이 직 · 간접적으로 남부가야에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셋째, 4세기부터 확인되는 고구려 계통의 갑주와 마구는 김해 대성동고 분군과 동래 복천동고분군과 같은 남부가야에서 주로 출토되어, 전기가야의 중심세력과 고구려의 교류를 상정케 하였다. 김해 양동고분군에서 출토된 長槍은 濊를 개재한 고구려와 문물교류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였다. 넷째, 4세기 말~5세기 초의 가야사의 전환기에는 광개토왕의 가야원정과 같이, 고구려와 가야의 직접적 접촉이 전개되었으며, 安羅와 任那加羅가 그 상대였다. 광개토왕의 남정 이후 신라와 고구려의 정치적 교섭이 전개 되면서 신라 개재의 교류채널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다섯째, 후기가야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문물의 분포는 남부가야에서 북부가야로 확산되었고, 북부가야의 예가 남부가야를 압도하게 되었다. 대고구려 교류의 중심이 남에서 북으로 라는 가야사의 전개와 연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섯째, 5세기 고구려와 신라의 신속관계는 신라를 통한 고구려 문물의 전파를 가능케 하였고, 신라는 고구려 문물의 공여를 통해 배후세력의 고구려를 가야제국에 각인시켰으며, 가야진출의 기회로 활용하였다. 신라의 경주와 가야의 동래 · 창녕에서 출토되는 고구려 계통의 문물들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창녕 교동7호분에서 신라의 금동관과 함께 고구려 계통의 청동각배, 초두, 삼엽환두대도, f자형경판비 등이 출토되는 것, 교동 11호분에서 고구려 관직명이 새겨진 환두대도가 출토되는 것이 그러한 예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목차

〈국문 초록〉
1. 머리말
2. 1~4세기(전기가야)의 교류
3. 4세기 말~5세기 초(가야사 전환기)의 교류
4. 5~6세기(후기가야)의 교류
5. 맺음말
참고문헌

키워드
  • 가야
  • 고구려
  • 갑주 · 마구
  • 광개토왕
  • 아라(安羅)
  • 창녕교동고분군. 강릉 · 동해
  • Gaya(加耶)
  • Goguryo(高句麗)
  • armot and helmet(甲胄) · harnesses(馬具)
  • King Gwanggaeto(廣開土王)
  • Ara
  • Changnyung Gyodong ancient tombs(昌寧校洞古墳群)
  • Gangrung and Donghae(江陵과 東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