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와 伽耶의 文化交流 : 古墳出土의 裝身具類를 中心으로
저자
金基雄
발행연도
1988 
발행처
新羅文化宣揚會 
언어
Korean 
학술지명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권호사항
Vol.9No.1[1988]  
수록면
71.0~81.0 
KDC
600.15 
초록

신라와 가야와의 문화교류를 고찰함에 있어 가야에 관한 문헌사료의 결여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가야에 관한 기록은 거의 후세에 전하여지지 않은 것 같아 『삼국사기』·『삼국유사』등에도 지극히 단편적인 기사가 남아있을 뿐이다. 즉 『삼국사기』에는 가야관계기사가 「신라본기」와 「지」 및 「예전」등에 12개여소에 보이나 그 대부분이 신라와 가야와의 국경충돌기사가 중심이 되어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오가야명과 『본조사략』의 오가야설을 인용한 기록이 있고 이밖에 금관가야의 신화전승 및 왕통계보 등을 모은 「가락국기」가 있을 뿐이다. 한편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문"에도 극히 단편적인 기록이 있고 중국사기인 『삼국지』「위지동이전」변신조, 『후한서』「동이전」한조, 『송서』「이만전」왜국조, 『남제서』「동남이전」가라국조, 『양서』「제이전」왜조 등과 같은 일본사서인 『일본서기』에도 가야관계의 자료가 있으나 그 모두가 주로 외교관계의 사료로서 국내사료와는 성격을 달리함으로 진중한 사료비판을 필요로 한다. 이와같이 가야에 관한 문헌사료가 희소함으로 한국고대사에 있어 가야의 역사는 공백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가야의 영역이였던 낙동강유역에 군집하고 있는 가야의 고분을 통하여 가야문화의 한 측면을 헤아릴 수가 있고 또 가야의 문화는 삼국시대에 있어 고구려 · 백제 · 신라 등 삼국의 문화에 뒤지지 않았을 뿐더러 신라 · 일본 등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케 한다. 다행히도 최근에 이르러 신라고분문화의 내용이 넓고 상세히 구명됨과 함께 다수의 가야고분이 발굴조사되어 가야의 고분문화가 보다 확실하여져서 신라 · 가야 두 나라의 문화교류실상이 상당히 깊게 밝혀져 가고 있다.

키워드
  • 신라
  • 가야
  • 문화교류
  • 고분출토
  • 장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