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代韓日關係史の硏究
저자
정효운
발행연도
1993 
학위수여기관
立命館大學 大學院 
학위논문사항
文學硏究科 1993 
형태사항
iii, 267 p. : 삽도 ; 26 cm. 
KDC
초록

본고는 6, 7세기 동아시아사의 전개를 신라의 한반도 통일이라는 사건과 각국의 대외정책과 외교 관계는 '국가적 이해(利害)'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역사관에서 고대 한일관계사상의 문제점을 재검토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고대 한일고대사상의 핵심 쟁점이 되는 '임나의 조' 문제와 '백강전투' 문제를 중심 주제로 하여 당시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분석을 통해 '백강전투'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그 결론을 토대로 하여 '임나의 조' 문제를 고찰하는 방법론을 취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밝힐 수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백강전투'에 있어 왜군파견의 목적은 백제구원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라의 정벌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7세기 동아시아 정세의 역사적 전개 상황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로는 신라가 왜에 '임나의 조'를 바쳤다는 사실은 6, 7세기에 실재한 역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이것은 《일본서기》의 '임나의 조'에 관한 기사가 한 간지 내려 기록되었다는 점을 간과한 역사적 해석인 것이다. 그 외에도 백제왕자 풍장은 의자왕의 아들로 왜에 인질로서 것이 아니라, 무왕의 아들로 백제의 왕위계승과 대고구려 정책 문제와 연관되어 왜에 정치적 망명을 했다는 사실. 둘째, '백강전투' 이후에 보이는 당의 사신인 곽무종 등이 파견된 목적은 백제 부여륭과 신라 문무왕과의 웅진회맹에 있어 왜왕을 참가시키려는 데 있었으며, 당사 유덕고의 파견은 당고종의 태산봉선 의식에의 참가 요구에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 사료상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임나의 조'와 관련하여 기록되어 있는 추고 8년, 30년조의 신라정벌 기사는 흠명기의 가야 멸망과 관련된 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 넷째, 《일본서기》에 보이는 임나, 임나부흥이라는 것은 본시 금관가야와 부흥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는 점. 그리고 끝으로 추고천황 시기의 대신라강경정책을 근거로 한 일본 고대국가 형성사의 구축에는 오류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소장기관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222001),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221016),영산대학교 중앙도서관 (248026),인제대학교 백인제기념도서관 (248012),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 (224010),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관 (341054)

키워드
  • 한국역사
  • 한일관계사
  • 고대사항